[에세이] 가을 두모 by 하정


에세이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남해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2화. 가을 두모 


이하정 그림 김진아 


누군가는 집을 짓고 누군가는 누워서 몸을 굽는다  


더운 날씨가 지나가고부터 코부기 집 짓기가 시작되었다. 팜프라 멤버 두 명과 촌민 두 명이 참여해 코부기 팀이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나무를 치고 합판을 박고 페인트칠을 하는 등 운동장 한구석에서 열심히 집을 짓는다. 

집 짓기 워크샵에 참여하지 않은 미미와 나는 그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노동하는 동안 운동장에 있는 평상에 돗자리를 펼쳐놓고 일광욕을 한다. 선글라스를 끼고 몸을 앞뒤로 구우며 책을 읽거나 멍을 때리거나 낮잠을 잔다.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면 구름의 그림자가 시시각각 달라지며 다른 무늬를 만들어낸다. 가을볕을 받아 선연한 색을 드러내는 금산도 매번 새롭게 아름답다. 

가끔 코부기 팀이 지나가며 우리에게 좋겠다거나 부럽다고 말한다. 나는 본인들이 자초한 일이라고 약 올린다. 하지만 가끔 그들이 너무 힘들어 보일 때는 조용히 있는다.


만두 이백 개 빚기

추석 연휴에 고향에 가지 않은 사람들끼리 모여 네팔 만두를 빚었다. 양배추, 당근, 생강 등 각종 야채를 다진 후 겨자기름에 볶아 속을 만들고, 밀가루피에 넣어 모서리를 꾹꾹 눌러내면 만두가 된다. 

함께 둘러앉아 만두를 빚고 있으니 제법 명절 분위기가 났다. 다섯이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인 결과 만두 이백 개가 만들어졌다. 일부는 얼려두고 일부는 큰 냄비에 쪄내어 나누어 먹는다. 

갓 찐 만두는 따뜻하고 부드럽다. 홀토마토에 향신료를 넣고 볶아 따로 만들어둔 소스를 끼얹으니 단맛, 신맛, 짠맛과 풍부한 향이 입속에서 축제를 벌였다. 혀와 배와 기분이 함께 풍요로웠다. 사람들이 명절에 모여 만두를 빚는 전통이 왜 생겼는지 조금 알 것도 같은 추석이다.


파랗게 빛나는 것  

촌민들과 함께 초전 몽돌 해변에 달이 뜨는 것을 보러 갔다가 파도 속에서 푸른 형광빛이 부서지는 것을 발견했다. 야광충이라고 했다. 밤의 바다에서 물리적 자극을 받으면 발광하는 플랑크톤의 일종이다. 푸른빛은 비규칙적으로, 잠시 나타났다 곧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야광충을 볼 수 있는 때와 장소는 예측할 수가 없었다. 이쪽에 나타나는가 하면 한참 뒤에 저쪽에서 다시 나타나는 식이었다. 사진이나 영상에 담아보려고 했지만 찍는 일이 쉽지 않았다. 파도만이 규칙적으로 밀려오고 돌아나갔다. 

유구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떤 순간들은 환한 빛을 낸다. 빛나는 순간이라는 말. 밤의 바다 앞에 서서 말없이 그것을 오래 보았다. 




다음 화에서 세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